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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하여

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직업(이직, 직장 이외의 밥벌이), 돈(경제공부), 그리고 마지막은 몸(운동)이다. 원체 운동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워왔고, 심심할 때면 공을 갖고 공터로 나가 시간을 보내던 것이 일상이었어서 특별히 운동이 관심사라고 할 것은 아니었는데, 생각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크로스핏'을 만나고부터였다. 

 

한 3년 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나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취업준비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는데, 무기력한 시간에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술이었다. 동시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움직임도 적어지다 보니 당연히 몸에 살이 붙는 느낌이었고, 백수에 살까지 찌면 스스로 용서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서 동네에 있던 크로스핏을 등록하게 된 것이다. 이사로 동네를 옮기면서 그 박스(크로스핏 체육관을 박스라고 한다)에서는 2달 정도만 하고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그때의 용기가 결과적으로 인생 운동을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운동 강도에 일주일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고, 운동하는 1시간이 나의 나머지 23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지만(매일 악몽을 꾸었다) 나는 정말 빠른 속도로 크로스핏이라는 운동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크로스핏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멋'이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운동을 정말 사랑해서 이런저런 운동을 하다가 크로스핏에 정착한 사람이었고, 당연히 몸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목표로 동시에 운동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 그룹에 속해서 운동을 하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몸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운동을 하게 되었고, 그 기분이 꽤나 좋았다. 특히 내가 다녔던 박스는 야외에서 뛰는 프로그램을 와드에 넣었는데, 근육이 갈라진 웃통 벗은 사람들과 같이 뛰다 보면 마치 내가 특전사 여군이 된 듯한 느낌으로 운동을 하게 되고 더욱더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길가던 사람들이 뭐하는 분들이냐고 종종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선들이 좋아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운동인들의 집합소!

 

두 번째 이유는,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다고 많이 느껴서인 것 같다. 이 느낌은 두 번째 박스에서 많이 느꼈는데, 나도 운동을 좋아하지만 운동에 대한 사랑을 비교해보면 나는 그냥 '관심'정도일 정도로, 운동에 거의 미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크로스핏이다. 남녀불문 모이면 운동 얘기만 계속하고 어떤 장비가 좋은지, 어떤 기록을 세웠고 서로 잘했다며 칭찬해주며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주는 곳. 회사에서는 운동 얘기를 하면 내가 특이한 사람이라고 얘기하지만, 박스 안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공간이어서 내가 편안히 최선을 다해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구독하는 '언니단'이라는 콘텐츠에서 최근 김혼비 작가가 쓴 편지에서 무릎을 탁 치면 읽었던 문장이 잘 설명을 해준다.

"나의 몸을 '보여지는 몸'으로서 인식하는 것과(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아도) '기능하는 몸'으로서 인식하는 건 굉장한 차이입니다."

와드에 참여하는 모든 회원들이 매일 어떤 무게로 몇 개의 동작을 달성했는지 기록을 하면서 스스로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스스로의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몸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된다. '보여지는 몸'이 목표시 되는 게 아니라 '기능하는 몸'이 우선시되면서 '보여지는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설계된 운동이 바로 크로스핏이다. 내가 띄엄띄엄 재미로 하던 운동이 일과가 될 수 있게 된 계기도 바로 그 목적이 다이어트나 재미에서 성과+생존(ㅜ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웃긴 일화가 있었는데, 회사에서 닭가슴살과 야채를 먹으며 사람들에게 '다이어트'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식단'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왜 그럴까 의문을 가졌던 찰나에, 헬스에 중독된 회사 동료가 나를 보며 식단 하시네요! 하며 지나가는 모습에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운동인들끼리는 역시 통하는 게 있다.

점심 도시락은 주로 이런 메뉴로 구성되어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그려왔던 이상적인 신체의 모습이 있었고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다. 미드 'Glee'에서 게이 소년 커트가 미성년자를 탈출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변화된 몸을 보며 했던 대사가 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꿈꾸던 신체의 모습에 가까워져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비로소 '내'가 된 것 같다는 대사였다. 뚱뚱하든 말랐든 내 몸은 언제나 나의 것이지만, 제일 '나'라고 느낄 수 있는 이상적인 몸의 상태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내 몸의 구조를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근육이 있는 탄탄한 신체를 동경해 왔기 때문에, 최근 운동을 하며 이제야 비로소 나의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몸을 긍정하게 된 경험을 하면서,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면서 운동을 나가게 되고 앞으로도 운동은 나와 함께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같이 운동하자!

커트의 놀라운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