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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기록

오랜만!

너무 오랜만이다.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는 합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지 오래.. 분발하자 라미야

 

요즘은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고 싶어(사실은 그냥 쉬고 싶다는 말) 시도 때도 없이 과거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위해 말이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좌절하고 비난하고 힘들어했으면서 왜 힘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렉 걸린 것처럼 '안 좋았다'라는 단편적인 느낌만 기억날 뿐 왜 안 좋았는지가 희미해져 있다.

생각해보니 근래에는 상대방이 했던 말들이 기억이 잘 안 나고, 정보의 바닷속에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게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기억력 저하라기보다는 그냥 나한테 영향력이 없는 이야기들은 듣자마자 한 귀로 흘리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최근에 겪었던 행복하고 고난스러웠던 일을 간단하게나마 기록하려고 한다.

 

1. 퇴사했다.

이 주제로 한바탕 글을 쓰려고 했으나 너무 귀찮아서 내버려 뒀다.  인생에 첫 퇴사를 경험한 지 3개월 만에 퇴사를 했고 결론만 말하자면 홀가분했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후회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고 이러한 방향 전환에 밑거름이 되겠거니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것저것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강의도 들으며 정말로 행복한 한 달을 보냈다. 6주 차로 접어든 지금, 이제는 슬슬 이직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쉬는 게 조금 덜 재밌어졌달까.

회사에서 제일 좋았던 복지는 점심 식대. 야키토리..잊지 않을게

 

2. 갈색 소변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다. 거의 12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변 색이 거의 콜라색이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인터넷을 급히 찾아보니 나의 상황과 너무 딱 맞아떨어져 변명도 할 수 없는 설명들이 나의 마음을 때리고 있었다. 안 하던 운동을 급격하게 하다 보면 근육이 손실되면서 근육세포 안에 있는 여러 물질들이 혈액, 소변으로 배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간이나 신장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조차 무시무시한 횡문근융해증이라는 병의 증상인데, 며칠 전에 거의 5개월 만에 간 크로스핏에서 털려 머리도 묶지 못할 만큼 상체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내 몸의 증상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물 많이 마시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마파두부를 맛있게 먹고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설명을 읽었으면서도 마치 내 머릿속에 지우개처럼 룰루랄라 하고 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무민이가 당장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의료인의 말에 정신이 확 들면서 바로 내과로 달려갔고 소변검사와 피검사, 수액을 연달아 맞았다. 다음날 오전에 정확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의사 선생님 경험상 거의 횡문근융해증이 맞을 거라고 하셨고 진단이 나오면 그에 따라 처방이 나올 거라고 했다. 역시 운동은 겉핥기식으로 하지 말고 꾸준히 자주 적당히 해줘야 한다는 교훈. 그리고 무민이의 말을 잘 듣자.

3. 나의 첫째 언니

나에게는 첫째 언니가 있다. 친언니는 아니고 유학시절에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3명 있는데 그중에 맏언니가 오래간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유난히 화창하고 하늘도 새파란 예쁜 날에 언니를 영접하게 되었다. 계속 외국에 생활하면서 개인작업을 하는 와중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 터라 꽤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게 되었고, 기혼자라 평소에는 오빠도 항상 함께 보다가 언니를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벅찬 하루를 보내고 왔다.

평일날 함께한 리움미술관. 작업들도 좋지만 전시를 구성하는 환경과 분위기, 무엇보다 인구밀도(ㅋㅋ)가 정말 좋았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며칠 동안 언니와의 시간들을 곱씹으며 행복했고 나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커다란 에피소드임이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았다'라는 감정만 남고 그 내용은 잊혀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언니가 다시 돌아가기 전에 잠시라도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선물과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마음이 너무 크면 선물도 그 정도 가격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 백화점을 몇 번이나 서성이다가 결국 좌절하며 책을 골랐다. 편지를 쓰려는데 글 안에 나의 감정이 한정되는 것 같아 몇 시간 동안 고민 끝에 결국 고맙고 건강하라는 말로밖에 전달하지 못했다. 선물을 고르는 것도,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자주 연습을 해야 필요할 때 나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좋은 사람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는 점.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 빨리는 사람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다는 점. 이렇게 좋은 사람을 친구로 둬서 영광스럽고, 나의 슬픔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언니는 혼자 하는 내 졸업식에서도 나 대신 울어줬다. 몇일 동안 나의 졸업을 도와주느라 잠도 거의 못 잤으면서 졸업한다고 한걸음에 달려와 하얀 꽃다발을 전해주며 울어주다니..!)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단단해졌고 많이 건강하다는 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둠의 터널에 빛이 들어오는 구간은 언제든지 있고, 지금 바로 그 구간을 지나고 있다. 그러한 구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들은 아마 평생 힘들 때마다 하나씩 꺼내보겠지. 이 순간이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순간 안다. 알아서 더 고맙고 벅찼던 시간이었다.

두근두근했던 그날의 모습

나의 약하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내 바운더리 안으로 끌어오는 게 나의 인간관계 전략인데, 지금까지는 아주 순탄하게 이어가고 있다. 아마 나의 사람 보는 안목 덕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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