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받은 걸까 그냥 나를 놔버린 걸까.
일을 하지 않고 무기력하다는 핑계로 수입활동을 하지 않은지 벌써 2달째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던 시간들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다는 찰나의 생각들을 매일 수십 번씩 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고통인걸 알면서도 무기력으로 오전을 날려버리고, 아침 먹고 졸려 낮잠을 대충 자면 이제 하루를 시작해 볼까 하는 조금의 의지를 갖게 된다. 저녁을 먹고 오후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의욕이 샘솟아서 내일은 이런저런것을을 해야지 상상하며 약간은 희망에 기대 잠에 들고(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하루가 무한 반복..
요즘은 가끔 새벽에 잠에서 깬다. 낮잠을 자다가도 깨고 이른 아침에도 깨고. 무언가 생각을 하다가 절망에 빠져서 잠에서 깬다. 내 인생은 결국 망했고 그래서 너무 무섭고 결국은 혼자 가난하게 남겨지는 생각에 절여져 눈을 찔끔 감는다. 눈을 뜨고 싶지 않고 그냥 이대로 계속 자고만 싶고, 그러다 얕은 악몽을 꾸다가 슬프다가 나의 현실에 절망하다가.. 내가 생각한 나의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는 데와 같은 생각들을 2,3번 하다 보면 다시 잠에 들기도, 아니면 그럼에도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며 절망적인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죄책감.
어쩌면 나는 나 혼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에너지를 나에게만 쓸 것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주기나 오빠 필요할 때 큰돈 빌려주기, 미래 조카에게 용돈주기와 같은 일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지금 결혼도 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는 내가 걱정이지만 언젠가는 짐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기 불편하고 부끄러운 가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아니 거의 확신에 가까운 미래 모습.
5년 전과 거의 같은 경제적 상황이지만 훨씬 낮아진 컨디션과 체력, 깊어진 주름. 나아질 생각 없는 재정 상황과 더욱 가난해지는 나의 취향과 낡은 속옷들. 큰 차이는 '아직 젊어서 괜찮아' '이제 시작이고 미래는 달라질 거야' '할 수 있어'와 같은 긍정적 사고의 전멸.
상처를 받았다. 그것이 나의 2개월 공백의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 아주 크게 상처를 받았다. 싫어하는 많은 것들을 괜찮다고 포장했고 나의 진짜 감정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이 있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과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매번 상처를 받았지만 참았고 (참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하게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절대 풀리지 않을 것이고 이런 사람쯤은 내 인생에서 다시 얽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길은 없었고 그냥 참고 견뎠다.
무디거나 잘 참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여서인지 2,3개월이 지날 때쯤에는 거의 매일 머리끝까지 분노로 차올랐다. 얼굴을 보는 것도, 같은 공간에 둘이 있다는 사실도 소름 돋게 싫었다. 예전처럼 한두 마디 시원찮은 농담을 던졌지만 대화는 매번 몇 마디로 끝났다. 상대방도 아는 듯했고, 상대방도 나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심한 벌레 보듯 나를 봤고 나는 이제는 곧 끝날 인연인 것처럼 상대방을 봤다. 이런 상황에서 섭섭함을 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분명 며칠 내로 가방 싸서 도망칠 거라는 생각에 가득 차서 퇴근하곤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해버렸다.
큰 현장에서 둘만 있게 되었고,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현장이 있어서 일을 당분간 못할 거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짐을 싸서 나왔다. 나중에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났을 땐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실망한 것 같았다. 배울 의지가 없다고.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겨우 배울 수 있는 큰 현장이 생겼는데 그냥 도망가버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몇 달 동안 참은 것이 터져버린 것이었고, 크고 좋은 현장이라서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찍어 누를수록 들이받고 싶은 외골수라 큰 현장에서 으스대는 모습에 좋은 현장도 미련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거의 대부분 하루 이틀짜리 현장에서 굴리다가 겨우 몇 달 만에 하나 크고 좋은 현장을 잡아 한껏 올라간 어깨에 뒤통수를 시원하게 날리고 싶었다. 결국 무책임한 나의 이러한 행동 때문에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그 시기에 맞물려 이런저런 기회들이 있었다. 개인 현장을 처음으로 받아보기도 했고, 지원한 두 군데에서 모두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기도 했다. 일이 풀리는 것 같아 더 미련 없이 팀을 나왔고, 찝찝하긴 했지만 더 이상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일이 풀리는 듯하면서 결국 풀리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나는 아직도 그 원점에 서있다. 두 달이 지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무기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또 이런 일이 반복될 것 같아 무서워서 그랬다. 온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한들 나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는 1년 4개월을 했는데 내 옆에 아무도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 역시 마음의 벽이 있어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뎠음에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연락 한통 없다는 것이 씁쓸하면서 내 지난 시간을 깊이 반성하게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서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 너무 달라서 계속 철벽을 쳐야지만 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과는 결국 오래갈 수가 없다.
지금 시간들로 잃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자.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의 질이 떨어졌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 수도 없다.
다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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